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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학교에서 돈에 대해 배우지 못했을까? – 교육 커리큘럼의 빈틈

by 신미스타 박스 2025. 4. 14.

왜 우리는 학교에서 돈에 대해 배우지 못했을까? – 교육 커리큘럼의 빈틈
왜 우리는 학교에서 돈에 대해 배우지 못했을까? – 교육 커리큘럼의 빈틈

현실을 살아가면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문제는 '돈'이다. 월급을 받는 순간부터 세금이 얼마나 빠져나가는지, 대출을 받으려면 이자가 얼마인지,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어떤 불이익이 생기는지 등 돈과 관련된 질문은 삶의 전반을 지배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정작 학교에서는 거의 배우지 못한다. 수능을 위한 수학 공식은 익숙하지만, 연금의 개념이나 복리의 원리는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회에 던져진다. 이 글에서는 왜 학교가 ‘돈’을 가르치지 않았는지,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지를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학교 교육이 놓친 ‘현실 경제’의 본질

한국의 공교육은 오랫동안 입시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대부분의 수업은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짜여 있다. 수학, 과학, 국어, 영어 등 주요 과목의 비중이 크고, 그 외의 교과목은 상대적으로 부가적인 취급을 받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서 반드시 겪게 되는 '경제적 삶'에 대한 준비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이 졸업 후 바로 사회로 나가 취업을 하게 되면 급여명세서를 받아들고 처음으로 ‘소득세’, ‘국민연금’, ‘건강보험료’라는 항목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이 항목들이 어떤 기준으로 계산되는지, 왜 떼이는지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다. 대학생이 되면 신용카드를 만들고 싶어지고, 알바비를 저축하거나 투자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지만, 어디에 어떻게 돈을 넣어야 안전하고 효율적인지 아는 경우는 드물다. 대출의 원리, 신용 등급 관리, 재무 계획 수립 등은 오직 ‘삶의 경험’으로 배우는 영역처럼 여겨진다.

결국 ‘돈’에 대한 무지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금융 문맹은 잘못된 소비 습관, 충동적인 대출, 투자 사기 피해 등으로 이어지기 쉽고, 이러한 문제는 사회 전체의 경제 건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내용을 배우지 않는 교육,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겪고 있는 커리큘럼의 근본적인 빈틈이다.

금융교육의 부재가 만든 세대 간 자산 격차

금융교육의 부재는 단순히 개개인의 ‘돈 관리’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세대 간 자산 격차를 더욱 확대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한 세대가 금융 지식을 갖고 자산을 축적하며 살아가는 동안, 다른 세대는 정보 부족으로 같은 출발선조차 갖지 못한다. 금융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사람은 쉽게 빚을 지고, 무리한 소비를 하게 되며, 자산을 증식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반면에 어릴 적부터 경제 개념을 익히고 부모로부터 기본적인 금융 지식과 투자 감각을 물려받은 사람은 일찍부터 자산을 불리며 시작하게 된다.

특히, 자산 형성이 시작되는 시기인 20~30대 초반의 금융 지식 유무는 결정적이다. 같은 월급을 받아도 어떤 이는 소비만 하고, 어떤 이는 저축과 투자를 병행하며 자산을 쌓는다. 몇 년이 지나면 그 격차는 눈에 띄게 벌어진다. 자산이 있는 사람은 이를 담보로 더 큰 기회를 얻고, 없는 사람은 고정비 부담 속에 발버둥친다. 이처럼 금융 문해력은 단기적 성과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격차’를 만든다.

더욱이 부모의 금융 이해도가 자녀의 경제 교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금융에 관심이 많고, 합리적인 소비습관과 자산관리를 해온 부모는 자녀에게도 일찍부터 용돈 관리, 저축 습관, 투자 기초 등을 자연스럽게 가르치게 된다. 반면 그런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정의 자녀는 독립 후 시행착오를 겪으며 뒤늦게 돈의 무게를 깨닫게 된다. 이처럼 금융교육의 유무는 단순한 교육적 선택이 아니라, 자산의 대물림과도 직결된 문제로 연결된다.

이제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준비해야 할 때

예전에는 돈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속물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가정에서는 ‘돈 이야기는 어른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말로 대화를 차단했고, 학교에서는 시험에 나오지 않는 주제라며 건너뛰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사회는 훨씬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금융은 더 이상 부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용 점수 하나로 취업이나 대출, 심지어 주거 선택까지 영향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나라들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여 일찍부터 금융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영국, 핀란드, 일본 등은 초등학교부터 금융 기초 교육을 시작하고, 고등학교에서는 신용, 투자, 세금, 예산 설계 등을 필수적으로 가르친다. 이런 교육은 단순히 이론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 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훈련한다. 반면 한국은 아직도 금융은 개인이 알아서 공부해야 할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정책적인 접근은 매우 제한적이다.

물론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청소년 대상의 금융교육 프로그램이 일부 도입되고, 성인 금융교육 역시 공공기관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더욱 근본적인 변화는 정규 교과과정에서 '실용 금융'을 필수로 가르치는 것이다. 예산 짜는 법, 신용등급 관리, 간단한 세금 지식, 연금 구조 등은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생활형 금융 지식’이다. 이제는 개인의 의지나 선택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체가 이 문제를 공감하고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돈을 배우지 못한 것은 우연도, 게으름도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교육의 우선순위에서 '삶'이 아닌 '시험'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이제는 사회가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현실을 살아가는 힘'을 물려줘야 할 때다. 누구나 평등한 정보에서 시작하고, 금융을 통해 자신만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 출발점은 학교에서 돈을 가르치는 것,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