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차이를 단순히 소득이나 직업으로 구분하곤 한다. 그러나 이 격차의 진짜 원인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금융 지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금융지식 격차가 만든 부의 세습에 대해 알아 본다.
금융지식은 언제부터 유전되기 시작하는가
부의 대물림은 단지 돈 그 자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유한 가정의 자녀가 성장해 또다시 부유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어릴 때부터 체득한 금융 지식 때문이다. 이들은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금융에 대한 태도와 지식을 습득하며 자란다. 예를 들어, 돈을 어떻게 분배하고 저축하며 투자하는지, 어떤 소비가 ‘지혜로운 소비’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우지 않더라도 생활 속 대화와 행동을 통해 직관적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금융에 대해 배울 기회가 적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돈 이야기를 금기시하거나 “돈은 더러운 것”, “우리는 원래 못 살아” 같은 말을 듣고 자라면, 자연스럽게 금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뿌리내리게 된다. 이 인식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소비 습관이나 장기적인 자산 계획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세대를 거듭해 반복된다는 것이다. 부모가 경제적 지식이나 실천력을 갖추지 못하면 자녀에게도 그 내용이 전수되지 않고, 결과적으로 자산 형성의 시작점조차 만들어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작용하는 이 ‘지식의 유전’은 소득과 자산의 격차보다 더 장기적이고, 더 깊은 불균형을 낳는다.
금융교육의 부재가 자산 형성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
학교 교육은 일반적인 지식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제 삶에서 필요한 경제 지식에 대해서는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초중고 정규 교육 과정에서는 예산 세우기, 저축과 투자, 신용 관리 등 실질적인 금융 개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경제 단원에서 간단히 개념을 소개하긴 하지만, 학생들의 실생활에 연관되는 방식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에 효과는 미비하다.
이러한 교육 환경 속에서 학생들은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모른 채 성인이 되고, 사회 초년생이 된 이후 처음 마주한 급여, 신용카드, 대출, 보험 등의 개념에 혼란을 느낀다. 이들은 시험 문제를 푸는 능력은 높을지 모르지만, 실제 생활에서 돈을 관리하고 계획하는 능력은 매우 낮다. 반면, 부모나 주변 어른에게 일찍부터 금융교육을 받은 이들은 사회에 진출하자마자 돈을 모으고 굴리는 법을 안다.
결국 이 차이는 자산 형성의 시기와 속도에서 큰 격차를 만든다. 금융지식이 없는 사람은 무리한 대출을 받거나, 신용카드를 부주의하게 사용하며, 비효율적인 저축과 소비를 반복한다. 반대로 금융에 익숙한 사람은 절세 전략을 세우고, 자산을 분산 투자하며, 리스크를 관리해 나간다. 이러한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복리처럼 누적되며, 계층 간 이동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된다.
특히 청년층은 사회 구조적 불안정성 속에서 금융 리터러시가 낮을 경우, 더 심각한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고금리 대출, 신용불량, 미래 자산의 부족 등은 단순한 실수가 아닌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그렇기에 금융교육의 부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지식의 세습을 넘어서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
그렇다면 가난의 유전이라 불리는 이 금융지식 격차를 줄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인지’다. 나에게 금융지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행히 요즘은 유튜브, 온라인 강의, 책 등을 통해 다양한 경제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다. 중요한 건 정보를 많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을 골라 실천에 옮기는 습관이다.
둘째는 ‘가정 내 금융문화의 변화’이다. 아이에게 투자나 저축 이야기를 너무 어렵다고 느껴 숨기지 말고, 가능한 쉬운 방식으로 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용돈의 일부를 저축하게 하거나 가계부를 같이 써보는 등의 활동은 아이의 금융 감각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이는 직접적인 설명보다 부모의 행동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에, 부모가 먼저 좋은 금융 습관을 갖는 것이 핵심이다.
셋째는 제도적인 금융교육의 확대다. 학교 교육에 실생활 기반의 경제교육을 포함시키고, 세금·투자·대출 등 현실적인 금융 개념을 학생 시기부터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진국의 경우, 초등학교부터 금융교육을 정규 과목으로 편성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사회의 재정 건전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국가와 지자체, 금융기관이 협력하여 성인을 위한 무료 금융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누구나 금융지식을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고,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단순한 교육의 의미를 넘어서 계층 간 격차를 줄이는 중요한 사회적 투자라 할 수 있다.
금융지식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지식 자산’이다. 이를 많이 보유한 사람은 같은 소득으로도 더 큰 부를 만들 수 있으며, 자녀에게 더 유리한 시작점을 제공할 수 있다. 반면, 금융에 대한 이해 없이 살아간다면 매달 버는 돈이 많아도 자산은 늘지 않고, 미래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가난은 유전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그 흐름을 끊기 위해서는 ‘금융지식’이라는 보이지 않는 유산을 먼저 바꿔야 한다. 지식이 곧 부가 되는 시대, 부의 세습을 넘어 지식의 세습으로 나아가는 길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